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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삶과 비우는 삶에 대한 사색(이원영)

작성자
hrights
작성일
2024-04-23 15:23
조회
111

이원영 / 용산시민연대 공동대표


1. 어머니의 신장투석


작년 하반기부터 양평 시골집에 사시는 어머니가 신장투석을 시작하셨다. 신장이 10% 정도밖에 역할을 못 해서 결국 신장투석을 치료 방법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자식들은 어머니를 일주일에 세 번 병원에 모시고 오가는 일을 분담하고 있다. 사는 동네에 몇 군데 병원에선 2년~3년을 기다려야 하므로 양평에서 하남시를 50분 가까이 차를 몰고 왔다 갔다 해야 한다.


신장투석은 혈액을 인공신장 기계를 통해 빼내서 노폐물을 걸러낸 다음에 다시 몸으로 돌려보내는 치료 방법이다. 신장은 그 모양새 때문에 콩팥이라고도 불리는데 몸 안의 체액, 전해질, 염기 등을 조절하며, 혈액 안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일주일에 세 번 병원에 가서 세 시간 이상을 혈액투석을 하는 일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그걸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병든 몸은 치료해야 하고 다행히도 신장투석 덕분에 어머니는 식사도 잘하시고 농사일도 조금씩 하시면서 그럭저럭 저물어가는 노후를 보내고 있다.


어머니가 신장투석을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들은 인체에서 신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덜 짜고 덜 맵게 먹는 습관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번 망가진 신장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고 한다. 운이 나쁘면 젊어서부터 신장투석을 평생 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니 건강한 몸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다시금 고마워할 수밖에.


2. 톨스토이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


인체와 사회는 복잡한 유기적 화합물이다. 혼자 살 수 없는 동물, 사람. 우리는 이런저런 사람들과 매일 만난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이 사람 관계이다. 관계가 틀어지면 고통스럽고 회복하기도 어렵다.


좋은 관계를 가꾸며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모든 사람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너무 피곤하다. 하여튼 어리석음 투성이인 나를 돌아보면서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궁금해하다가 존경스러운 톨스토이 이야기를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너무나 유명한 톨스토이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이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톨스토이의 대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일이다.
인간은 그것을 위해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날마다 그때그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3. 새해에 품은 소망


어머니 신장투석과 톨스토이 세 가지 질문이 무슨 상관일까?


첫째, 어머니는 자식들을 번거롭게 하는 것에 대해 무척 미안해하신다. 하지만 어머니의 큰 사랑을 받고 자란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긴다. 사람과의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 생각해보니 자식 여럿 고생해서 키우길 잘했다고 말씀하신다. 빌려준 것을 다시 받는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시니 그렇게 생각하시라고 했다.


둘째, 꼭 톨스토이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너무 소홀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더 자주 잔소리하고 화내고 무언가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뇌과학자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처럼 여기는 착각을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분석하기도 한다. 때론 남으로 여기는 것이 더 현명하고 인간적일 때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해보면 좋겠다.


셋째, 우리 어머니도 그렇고 톨스토이도 그렇고 타인에게 크고 작은 선을 행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은 존경의 마음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병들고 외롭게 세상을 떠나는 게 인생인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매우 안쓰럽고 허무하다. 아프지 않고 늙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느낀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많은 재산과 명성에도 매우 가난한 삶을 택했고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비록 허무하지만 만족스러운 삶, 아주 작은 것들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란 무엇인지?


2024년에 나는 느리게 비우는 삶을 살려고 애쓰기로 했다. 느려야 돌아볼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고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성급하고 건조하고 빡빡한 일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벌써 4월 하순이니 이런 새해 소망이 잘 실천되고 있는지는 지나 봐야 알 일이다. 우리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래 가사가 삶에 큰 위안이 되는 나이가 어느덧 되었나 보다.